Kwon Min Jhang

Biography

KO/EN

작가 노트

어릴 때부터 빛이 궁금했습니다. 저 빛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궁금증이 오래 남아, 저는 빛의 근원을 찾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빛을 묻는 일은 결국 사람을 묻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차가운 진공이 아니라 맥박이 뛰는 현실을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제가 빛을 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빛 그 자체가 아니라 빛이 생겨나기 바로 전, 하나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어떻게 물질 위에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을까. 요즘 제 작업은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붓 대신 손으로 그립니다. 손끝에 물감을 묻혀 건반을 누르듯 화면을 하나씩 채웁니다. 손끝으로 두꺼운 결을 밀어 올리고, 직접 만든 도구로 그 위를 파고듭니다. 쌓고, 깎고, 다시 쌓습니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같은 흔적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날의 힘과 맥박, 호흡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화면의 호흡과 리듬이 됩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시간을 쌓는 일에 가깝습니다. 중심을 향해 결을 엮다 보면 설레고, 두근거리고, 가끔은 눈물이 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저를 잊습니다. 그 몰입의 시간이 그대로 화면 위에 굳습니다. 저는 화면이 스스로 자라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모든 작품은 하나의 중심에서 시작합니다. 그 중심이 무엇인지는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시작일 수도 있고, 마음이 모이는 자리일 수도 있고,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무언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는 생성의 움직임입니다.

다만 화면 가운데 솟은 작은 꼭지점의 방향만은 분명합니다. 이 꼭지점은 기법 때문에 생긴 돌출이 아닙니다. 차가운 현실의 바깥과 뜨거운 내면을 잇는 자리입니다. 현실과 이상, 몸과 영혼. 갈라진 두 세계가 이 한 점에서 만날 때, 사람은 실존의 공허를 채우고 삶의 이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꼭지점을 하늘로 향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력을 따라 아래로, 제가 딛고 선 땅을 가리키게 두었습니다.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파도에 흔들리고 자신을 잃곤 합니다. 그래도 삶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자리는 허공이 아니라 이 단단한 땅 위입니다. 그래서 꼭지점은 제 나침반입니다. 제 그림은 현실을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한 것입니다.

제 화면이 원으로 모이는 이유도 같습니다. 원은 가장 단순한 형태이면서 경계 없이 사방으로 번져 나갑니다. 제가 담으려는 빛도 잡히지 않는 관념의 빛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실재하는 빛입니다. 그래야 누구든 그림 앞에서 편하게 자기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랑과 초록, 보라와 붉은색은 저마다 다른 뜻을 가진 상징이 아닙니다. 같은 생성의 구조 안에서 서로 다른 호흡과 온도를 내는 변주입니다. 제가 끝까지 붙드는 것은 색이 아니라 중심이고, 형태가 아니라 리듬이고,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제 그림을 보고 신석기 빗살무늬토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 말이 반갑습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도 손을 반복해 움직이며 흙 위에 자기가 본 세계를 새겼습니다. 저도 오늘 캔버스 위에서 같은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질서를 새기고 있습니다. 시대와 재료는 달라도 손이 기억하는 언어는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림으로 정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반복하는 손끝에서 보이지 않던 질서가 조금씩 드러나는 순간을 믿습니다. 이 그림 앞에 선 누군가가 자신의 호흡과 시간, 삶의 중심을 다시 찾는다면, 제 작업은 그 사람 안에서 또 하나의 생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여정을 손끝의 힘이 허락하는 한 멈추지 않겠습니다.

빛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뒤

- 권민장 〈The Origin〉 연작의 궤적과 그 현재

권민장의 연작에서 어느 시점부터 '빛'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2018년 무렵 시작된 〈근원의 빛 Light of The Origin〉 연작은 2022년을 지나며 〈The Origin〉이 된다. 제목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두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한 화가의 질문 전체가 자리를 옮긴 사건이다. 이 연작을 읽는 열쇠는 어쩌면 화면 안이 아니라 이 조용한 개명 속에 있다.

출발은 경외였다. 초기작의 제목 〈빛의 기억을 따라서〉(2018)가 일러 주듯, 그는 기억 속 가장 오래된 빛을 뒤쫓는 사람으로 화면 앞에 섰다. 이 시기의 물음은 명사형이다.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근원은 무엇인가. 명상을 방법 삼아 그는 화면 한가운데 발광하는 원을 세웠고, 그 원은 현실과 이상, 몸과 영혼이라는 두 층위를 잇는 통로로 상정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미 결정적인 선택 하나가 내려져 있었다. 중앙에 솟은 꼭지점을 하늘이 아니라 땅으로 향하게 한 것. 초월의 회화가 되기를 스스로 거절한 이 방향의 결단은, 돌이켜 보면 이후 모든 변화의 씨앗이었다.

논리는 단순하다. 진리가 저 너머가 아니라 딛고 선 땅 위에 있다면, 근원은 더 이상 화면에 그려 넣을 상징일 수 없다. 그것은 손의 노동과 시간 속에서 몸소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 된다. 〈The Origin〉이라는 개명은 이 귀결을 뒤늦게 승인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빛이 생겨나기 바로 전, 하나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시작되는 순간"을 그린다고 말한다. 근작에서 빛은 그리는 대상이 아니라 도달하는 상태다. 손끝으로 안료를 밀어 올리고 직접 만든 도구로 깎아 내리는 지두점묘(指頭點描)의 반복이 수없이 쌓인 뒤에야, 표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제 스스로 빛을 낸다. 질문이 명사에서 동사로 옮겨 간 것이다.

화면도 함께 움직였다. 초기의 원이 어둠 속에서 정적으로 발광했다면, 〈The Origin 13-1〉(2022)에 이르면 방사의 결이 바람개비처럼 휘어지며 화면 전체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The Origin 65〉(2024)에서 그 운동은 숨 쉬는 바탕 위의 단단한 구체로 응축되고, 〈The Origin 67〉(2024)에서는 결 하나하나가 화면 가장자리까지 물결처럼 밀려 나간다. 중심의 지위도 달라졌다. 그것은 더 이상 태양도 광원의 상징도 아니다. 생명의 시작일 수도, 의식이 응축되는 자리일 수도,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일 수도 있는, 판정이 유보된 좌표다. 작가는 중심이 무엇인지 확정하는 대신 거기서 일어나는 움직임만을 붙든다. 하나의 원리를 여러 방식으로 굴려 보는 이 태도 덕분에, 연작은 이미지의 반복이 아니라 탐구의 기록이 된다.

이쯤에서 권민장의 자리를 사조의 지도 위에 놓아 볼 필요가 있다. '근원', '본질', '내면의 빛' 같은 어휘는 본래 20세기 전반 정신적 추상의 언어다. 칸딘스키가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로 열고, 몬드리안과 말레비치가 신비주의의 자장 안에서 밀고 나갔으며, 전후의 색면회화가 숭고의 이름으로 이어받은 계보. 그러나 그 계보는 한결같이 위를 향했다. 물질을 지우고 정신으로 상승하는 것이 그들의 문법이었다. 권민장은 같은 질문을 물려받되 방향을 뒤집는다. 그의 꼭지점은 중력에 순응해 내려오고, 정신은 물질을 떠나는 대신 물질의 두께 속에서 발생한다. 초월 대신 내재를 택한 이 수정이야말로 오래된 질문을 동시대의 것으로 만드는 갱신이다.

방법의 계보는 더 가깝다. 붓을 버린 손, 수행에 가까운 반복, 행위가 곧 화면이 되는 구조는 분명 한국 단색화의 유산이다. 그러나 단색화의 반복이 화면을 비우는 쪽으로 나아갔다면, 권민장의 반복은 화면을 기른다. 지우는 수행이 아니라 낳는 수행이고, 침묵의 밀도가 아니라 생성의 밀도다. 그의 표면이 신석기 빗살무늬토기를 자연스레 소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명 이전의 손이 흙 위에 저마다 이해한 세계의 질서를 옮겨 적었듯, 그는 오늘 안료 위에 생성의 리듬을 새긴다. 한 개인의 수행이 손의 계보라는 훨씬 긴 시간에 접속하는 순간이다.

공교롭게도 시대가 이 계보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2018년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이 구겐하임 역사상 최다 관객을 모은 이래 명상과 치유, 영성은 다시 동시대 미술의 진지한 의제가 되었고, 디지털 가속에 지친 감각은 손노동과 느린 시간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권민장의 회화는 이 국면에서 유행을 좇은 결과물이 아니다. 십 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파 내려간 끝에 시대와 마주친 경우이며, 뒤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되돌아온 자리에 먼저 서 있었던 쪽에 가깝다.

〈The Origin〉 앞에서 관람자가 건네받는 것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 대한 초대다. 화면에 굳어 있는 것은 화가의 맥박과 호흡, 몰입이 지나간 시간이고, 그 결을 눈으로 따라가는 동안 보는 이의 시간도 함께 느려진다. 그리고 발밑을 가리키는 꼭지점이 시선을 제자리로 되돌릴 때, 근원은 화면 속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사람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빛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뒤에야 이 회화는 비로소 근원이라는 제목값을 하게 되었다. 〈The Origin〉은 어떤 대상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이름이다.


약력

- 2025 김천시립미술관 초대전 및 개인전 9회

- 2021 경주솔거미술관 기획전 / 2024 아트 벤쿠버 캐나다 및 프랑스, 벨기에, 튀르키예, 중국 국내외 아트페어 단체전 다수 참가

- 대한민국미술대전 / 경상북도미술대전 / 외 서양화 비구상부분 다수 입상

-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 / 대구한의대학교 변정환 설립자 / 국내외 병원 및 개인소장 다수

- 현) 한국미술협회원 서양화분과